새로운 이해.

Adirondack Chair

Adirondack Chair (Photo credit: frontier.1968)

구약과 신약, 두 시대 사이의 공백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는 비디오를 보았다.

역사적인 사실들을 이해하면서 신약 시대의 역사적 배경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구약이 히브리어로 씌어지고, 그리스의 교육의 열정이 유대교 문화에 스며들고, 유일신을 믿는 유대인들의 정체성이 지켜지고 있는 있었다. 그러는 동안 그 지역의 패권 다툼 속에서 이스라엘 땅은 힘의 각축장으로 변하고 있었다. 이 국제적인 정세 속에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정체성에 시험을 당하고 있었다. 다신교가 대세인 그 당시의 국제 관계 속에서 그들은 선민의식은 왕따 현상의 또 다른 모습이었을 지 모른다. 하지만 신은 이러한 민족을 어여삐 여기지 아니할 수 있을까.

예수께서 활동하던 당시 이 민족은 역시 식민 지배하에 놓여 있었고, 이들에게는 다윗이라는  롤 모델이 있었다. 새로운 구세주를 출현을 갈망하고 있었다. 민중들은 예수에게서 메시아의 가능성을 보았다. 예수가 보여 준 놀라운 기적들과 말씀들은 그들에게 엄청난 기대를 가지게 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러나 예수는 현세적인 이스라엘 민족의 해방이라는 군중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하나님의 방식으로 우리 인간들을 구원하길 원하였고 성난 군중들은 예수를 십자가의 형틀에 매달고 만다. 사두개인, 바리새인 그리고 선한 사마리아 사람들 모두 함께 였다. 여기에 반전이 있다. 예수는 이 십자가를 통한 피흘리심을 통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모든 인간의 죄를 사하여 줄 것을 간구하였다.  선하신 하나님께서는 이 예수님의 게세마니 동산에서의 피흘리면서 간구한 기도를 들어 주시고 당신의 외아들을 인간 원죄의 속죄양으로 삼으시는 인류 구원의 결단을 내리신다.

유대인들은 예수를 메시아로 인정을 하지 못하고 있다. 12 지파를 다시 모으지 못하였고, 예수 이후에 이 땅에 평화가 오지 않고 있기 때문이란다. 일부의 메시아닉 유태인들은 아니지만 많은 유대인들은 예수에 대한 믿음이 없고 나아가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믿음도 없다고 보아야 한다.

확실히 이 땅에 평화가 오지 않은 것을 사실이다. 예수께서 우리에게 제시한 길, 진리, 생명은 우리에게 평화를 가져다 주지 못했다는 말인가.

Advertisements
This entry was posted in Jesus. Bookmark the permalink.

Leave a Reply

Fill in your details below or click an icon to log in:

WordPress.com Log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WordPress.com account. Log Out / Change )

Twitter picture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Twitter account. Log Out / Change )

Facebook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Facebook account. Log Out / Change )

Google+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Google+ account. Log Out / Change )

Connecting to %s